“의미 없어서” “바빠서” 등 이유
#. 명지대 늦깎이 졸업생 강모(29)씨는 최근 졸업식에 불참했다. 아직까지 취직을 하지 못한 강 씨는 “후배들 밥 사줄 돈도 없고, 동기들도 이미 다 졸업을 해서 굳이 학교를 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며 “그 시간에 토익 한 자 더 외우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졸업생 이모(25ㆍ여) 양도 “교외 동아리를 해서 학교에선 아웃사이더처럼 지냈다”며 “졸업식 가도 반겨줄 선후배가 없다”고 했다.
최근 졸업식을 찾은 졸업생들의 숫자가 크게 감소했다. 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못해서 눈치가 보인다’거나 ‘바쁘다’, ‘굳이 갈 필요 없다’는 이유로 졸업식에 불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사모를 쓰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던 떠들썩한 대학 졸업식은 이제 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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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졸업생들이 학교 강당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헤럴드DB] |
알바천국이 최근 1402명의 예비졸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28.4%의 응답자는 ‘졸업식에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 중 62.4%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고, ‘취업, 시험 준비에 시간이 빠듯해서(17.2%)’, ‘취업을 못해서(12.9%)’, ‘같이 졸업하는 동기가 없어서(7.5%)’라는 응답이 높은 호응도를 받았다.
졸업식에선 주인공이지만, 회사에선 눈칫밥 먹는 존재인 신입사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부 대기업들이 학교에 플래카드를 걸며 졸업식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지만, 일손이 부족한 나머지 기업에 조기 입사한 경우 졸업식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연세대 졸업생 윤모(27) 씨는 26일 열리는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최근 한 중견기업에 취직했는데, 쏟아지는 업무 탓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윤 씨에게 반차를 사용하고 오전에 졸업식을 다녀오라고 종용했지만 거절했다. 그는 “졸업식이 오전 11시라 시간이 애매하다. 신입사원이 괜히 졸업식 다녀와서 눈칫밥 먹느니, 근무하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근 언론사에 입사해 수습교육을 받고 있는 A 씨도 “눈치가 보여서 1진 선배에게 졸업식 간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언론사 기자인 B씨도 “오전에 간신히 졸업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회사에 들어가 마감을 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학교측이 준비한 졸업장들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 20일 졸업식을 진행한 한국외대 영어대학의 경우 졸업자 158명 중 29.7%에 해당하는 47명이 아직도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이 대학의 경우 지난해 20%의 학생들이 아직도 졸업장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 졸업장들은 대학본부 한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대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학생들이 졸업식을 방문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고, 준비된 졸업장들 상당수가 학생지원팀이나 각 단과대 사무실에 보관되고 있다. 사회인으로 새출발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측이 공들여 준비한 졸업식과 졸업장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들은 졸업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방편을 시행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전체 대학 졸업식과 단과대 졸업식을 이원화해 시행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전체 졸업식이나 단과대 졸업식을 선택가능하다. 또 졸업식 일정을 학생들에게 꾸준히 공지하고 있다.
김성우 기자/zzz@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