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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우려" vs "인권 보호" 성(性)중립화장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종수정 2020.01.10 16:21 기사입력 2020.01.1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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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성중립화장실' 이용 촉구
일부 여성들 '여성 범죄' 불안…가장 불안한 장소 '화장실'
미 백악관·대학들 중립화장실 잇따라 설치

모든 성(性)의 출입을 허용하는 성 중립 화장실 표기 [AP=연합뉴스 자료 사진]

모든 성(性)의 출입을 허용하는 성 중립 화장실 표기 [AP=연합뉴스 자료 사진]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성중립 화장실'을 둘러싼 남녀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성중립화장실이란 남녀 공용 화장실과는 다른 개념으로, 성별에 따른 구분 없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두가 사용 가능한 화장실을 뜻한다.


문제는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다. 일부 여성들은 성소수자 배려 논란에 앞서 애초 여성이 아닌 경우 '여성 범죄'에 대한 인식이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취지로 성소수자들의 성중립화장실 설치 요구에 공감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화장실'을 가장 불안감이 높은 장소로 꼽았다. 불법 촬영 관련 범죄는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은 성중립 화장실 반대 여론 등은 일종의 차별이라고 주장, 이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하고 있다.


성중립화장실 설치를 반대한다고 밝힌 20대 중반 직장인 여성 A 씨는 "남성이지만 여성이라 주장하는 트렌스젠더들이 여성교도소에서 수감된 후 여성 수감자들을 성폭행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이런 화장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불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30대 초반 직장인 B 씨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당초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근력 등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것이 사실이다."라면서 "만일 범죄가 발생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중립'이면 남성·여성 2개의 성 아닌가, 그럼 남성화장실 여성화장실 모두 이용할 수 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잘 논의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 7월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 2017년 7월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제18회 퀴어문화축제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트렌스젠더들, 차별에 대한 두려움 '화장실' 이용 포기


성중립화장실 설치에 대해 반대 여론이 있는 가운데 트렌스젠더들은 일상 속 차별로 인해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41.1%가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렌스젠더들이 성중립화장실을 이용 못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이 수반된다. 생리 현상을 말 그대로 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미국 버몬트 주의 트랜스젠더 고등학생 카일 지아드 체이스(Kyle Giard-Chase)는 성중립 화장실을 요구하며 "나는 아침 8시에 등교하는 순간부터 화장실 가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버티거나, 아니면 (화장실을 가서) 폭력을 견뎌야 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2008년 미 UCLA 로스쿨 조사 결과 성 소수자의 68%가 화장실에서 언어적인 모욕을 당했고 9%는 폭행을 당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트렌스젠더들의 성중립화장실 이용에 따른 범죄 우려도 단순 오해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 있다. 일반적으로 비트렌스젠더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남성화장실의 경우 남성용 소변기와 양변기가 함께 있거나 △여성화장실의 경우 양변기만 있는 구조다.


반면 성중립화장실은 화장실마다 독립된 잠금장치가 있고 세면대와 양변기가 모두 갖춰진 구조다. 아예 낯선 이성과 동성을 마주칠 수 없는 구조다.


성중립화장실.사진=위키피디아

성중립화장실.사진=위키피디아



◆ 미 백악관 2015년 '성중립화장실' 설치…대학가 잇따라 시행


이런 가운데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했다. 이어 2016년 뉴욕시의회는 시내 모든 공중화장실에 성 구분을 없애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1인용 화장실 남녀 구분을 없애고 성중립 간판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워싱턴D.C와 같은 도시에선 캘리포니아대학(UC) 계열을 포함해 미국 내 150개 대학도 성 중립 화장실을 도입했다.


영국의 경우도 옥스퍼드대학 산하 서머빌 칼리지 학생들은 역시 2018년 1월 투표를 통해 화장실 남녀 구분을 없애기로 했다. 화장실의 성별 구분을 없애자고 제안한 것은 이 대학의 성소수자 단체다.


이 단체 대표인 에일리드 윌슨 씨는 "성중립 화장실은 성별을 남녀로 양분하는 공간(화장실)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캐나다 등에서도 성중립화장실이 증가하는 추세며, 중국 베이징의 대표 유흥가인 산리툰·난뤄구샹 등에도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됐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할 방침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여성들 "가장 불안한 장소 '화장실'"…불안감 없어질 수 있나


그러나 화장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 우려는 여전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가장 불안감이 높은 장소로 화장실을 꼽았다.


서울시와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지난해 6월 23∼29일 서울에 사는 만 19~59세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여성 80%는 '불법 촬영으로 일상생활에서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성중립화장실 논란에 앞서 아예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법 촬영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장소로는 △숙박업소가 43%로 가장 많았고, △공중화장실 36%, △수영장과 목욕탕이 각각 9%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을 '불안감이 가장 높은 장소'(52%)로 꼽았다.


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불법 촬영과 관련된 범죄 건수는 6842건에 달한다. 이는 2009년 829건보다 8배나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는 범죄 발생 여지는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해성 박사는 한 매체에서 "화장실 구조만을 가지고 성범죄가 일어난다고 보긴 어렵지만, 남녀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경우 좀 더 쉽게 범죄에 다가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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