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정체성이 드러날 우려로 트랜스젠더 3분의 1이 투표 포기
중앙선관위에 ‘성별 상이’로 투표 과정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유의하라 요청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사진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사진 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투표를 위한 신원 확인 과정에서 본인의 성별표현과 선거인 명부상 성별이 다른 것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10일 밝혔다.

지난 3월 31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아래 무지개행동) 등 성소수자 182명은 “선거인명부에 남·여로 나눈 성별 표기는 트랜스젠더, 젠더 퀴어, 인터섹스 등의 투표 참여를 가로막는다”며 “선거인명부 성별란을 삭제해야 한다”고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진정인들은 투표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에 반해 법적성별이 드러나 모욕적 경험과 차별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투표 시에 투표관리관이 신분증 등을 제시한 후 본인여부를 확인하는데, 이때 복장, 머리스타일, 목소리, 말투 등 특정 문화 속에서 남성스럽거나 여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외형적인 모습이나 행동 등의 성별표현이 법적성별과 다를 경우 추가 서류를 요구하거나 공개적으로 외모에 대한 지적 등을 하여 차별을 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별정체성이 드러날 우려로 트랜스젠더 3분의 1이 투표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인권위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90명 중 22명(24.4%)이 신원 확인 과정의 부담으로 투표를 포기했다. ‘한국 트랜스젠더의 차별과 건강’(고려대 김승섭 교수 등, 2017)에서도 트랜스젠더 48명 중 16명(33.4%)이 같은 이유로 투표에 불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일본과 미국의 예를 들며 성별이 아니어도 이름, 주소, 생년월일 등으로 선거인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일본은 사생활의 침해, 차별 등을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별로 투표소 입장권에 성별란을 삭제했다”며 “미국도 많은 주에서 투표소 입장권에 성별정보를 기재하지 않고 있다”고 제시했다. 일본 아이치현은 기초지자체(시정촌) 54곳 중 47곳이 투표소 입장권에 성별란을 폐지했다. 미국은 네바다, 몬태나, 버지니아, 오리건, 워싱턴, 유타, 캘리포니아 주 등에서 유권자 등록 신청서에 성별정보를 포함하지 않거나 포함할 필요가 없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인권위는 오는 21대 총선에서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헌법에 따른 선거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인권위는 “선거인의 성별표현이 선거인명부의 법적성별과 상이한 것만으로 선거인에게 신원 확인을 위한 추가서류를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며 “‘남자냐 또는 여자가 확실하냐?’ 등의 불필요한 질문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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