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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트랜스젠더에 ‘숨죽여 살라…’ 투명인간 강요하는 사회

등록 :2020-02-10 04:59수정 :2020-02-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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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 여대 합격생의 등록 포기
법적 문제 없는데 구성원들이 거부
20여개국선 성전환자 군복무 허용
한국, 차별금지법 제정 지지부진 “옆에 있는 존재로 봐줄순 없을지…”
성전환 수술 뒤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고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2020년 신입생 으로 합격한 ㄱ씨의 입학을 두고 찬반 논쟁이 불거진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지난 6일 ㄱ씨의 입학을 환 영한다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성전환 수술 뒤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고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2020년 신입생 으로 합격한 ㄱ씨의 입학을 두고 찬반 논쟁이 불거진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지난 6일 ㄱ씨의 입학을 환 영한다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연합뉴스.

육군이었던 변희수 하사, 그리고 숙명여대 예비 법대생이었던 ㄱ(22)씨. 최근 두 사람의 분투를 지켜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붙든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이 나와서 실제로 잘 살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되고, 우리에겐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든요.” 9일 전화선 너머에서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의 한숨이 들려왔다.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 트랜스젠더’인 김 위원장의 주변엔 성소수자인 친구가 많다. 지난해 그는 사랑하는 친구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트랜스젠더였던 친구는 성전환 수술까지 마쳤지만 법정에서 성별정정을 거부당했다. 용감하게 나섰던 변 하사가 강제전역을 당하고 ㄱ씨가 입학을 포기하는 걸 보며, 김 위원장은 친구를 잃은 고통을 다시 느낀다. “트랜스젠더인 친구 여러명이 절망으로 세상을 떠나는 걸 많이 봐왔어요. 인권은 찬반의 문제가 아닌데, 그냥 옆에 있는 존재로만 봐줄 순 없을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투명인간’처럼 여겨져왔던 트랜스젠더들이 그저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부’하고 ‘복무’하겠다고 선언한 것만으로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2001년 지상파 텔레비전 광고에서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대중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익숙하지만, 함께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씨는 앞서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내 주변엔) 없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이라며 “같이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트랜스젠더를 실존인물이라고 느꼈다면 이럴 순 없다”고 말했다.

변 하사와 ㄱ씨는 타당한 이유 없이 스스로의 정당한 자리를 뺏겼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제도’는 문제 되지 않았다. ㄱ씨는 지난해 10월 법원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은 ‘여성’으로 지난달 숙명여대 법대에 합격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학내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비약적”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변 하사도 지난해 12월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등록 성별을 바꿔달라는 청구서를 제출해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육군본부는 ‘전역 심사’를 미뤄달라는 그의 요청을 무시하고 지난달 22일 강제 전역을 결정했다. 공동체 내부의 혐오와 배제의 정서가 작동한 것이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토론하거나 논의하고 알아가는 게 아니라 강제로 전역을 결정하거나 반대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며 “그동안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이웃이나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더 갖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두 사건 모두 논쟁의 여지 없이 혐오로 봐야 한다”며 “제도가 변화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민주시민교육 등으로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채 약자들의 공포가 강화되고 공포는 혐오로 전환돼, 굉장히 나쁜 형태의 공동체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숙의 과정은 생략됐다.

국제사회에선 이미 사회적 논쟁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추세다.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나라는 20여곳이다. 영국·오스트리아·독일 등 18곳이 성소수자의 입대를 완전히 허용하고 있고, 쿠바와 타이 등이 일정 조건에 따라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대학 입학 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일본 여자대학의 상당수는 성전환 수술이나 ‘법적 성전환’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입학도 허가하고 있다. 논쟁의 층위 자체가 다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트랜스젠더 정책은 성별 이분법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존재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어 나섰던 이들이 노골적 배제와 거부를 겪게 되면서 총선을 앞두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목소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10년 동안 유예됐다. 정치권이 만들어낸 사회적 지체가, 이런 문제를 시민들 간의 대립과 배제라는 감정으로 환원하는 방식을 만들어냈다”며 정치권의 직무유기를 비판했다. 법무부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예고했다가 거센 반발을 받았고, 이후 거듭 반발에 부딪혀 20대 국회에는 법안이 한건도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배지현 전광준 강재구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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