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친구들은 왜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할까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20.11.20 08:30l최종 업데이트 20.11.20 08:30l 박한희(equalityact) [btn_arw2.gif] -- 공감41 댓글1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색이 담긴 깃발. ▲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색이 담긴 깃발. ⓒ 위키커먼즈 -- 얼마 전, 한 토크 자리에 패널로 참석했을 때, 사회자가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구조적, 제도적 차별에 대한 일화가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나는 지정성별 남성인 트랜스젠더로서 아래와 같이 내가 겪은 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몇 달 전 지인의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었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포인트 등록을 하겠냐고 했다. 보통은 귀찮아서 안 하지만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만 알려주면 바로 처리된다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불러준 내용을 직원이 -- 분위기 속에서 계산을 마쳤다. 위 사연을 읽은 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큰 차별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원하던 물건을 샀고 직원이 내 정체성을 알거나 어떤 혐오 발언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트랜스젠더로서의 구조적, 제도적 차별을 묻는 말에 위 사연을 이야기한 것은, 등록되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삶의 한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있는 그대로의 삶 얼마 전에는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트랜스젠더 패널들이 함께 죽음, 건강,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했을 때 나를 포함해 다들 전반적으로 좋지는 않았다. 다만 그보다 눈에 띈 부분은 공통적으로 병원에 잘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 개인은 어쨌든 대응할 자원이 있기에 이런 일들을 겪는다고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런 일들이 쌓이게 되면 점차 법적 성별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을 피하게 된다. 회피와 포기, 이게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이 살아가면서 많이 하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실태조사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한 트랜스젠더 60명 중 38명(63.3%)이 해당 업무를 포기했다. 이렇게 포기하는 것은 당사자로서는 당장은 어쩌면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당연히 달가울 리 없다. 어디를 가도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가야 하니까. 사회적으로는 더 문제다. 이러한 포기는 트랜스젠더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트랜스젠더와 함께 살아간다는 인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차별을 고착화한다. 있는 그대로의 추모 --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2.6 ▲ 6일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합격 사실이 알려진 후 재학생들의 찬반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2.6 ⓒ 연합뉴스 -- 관련사진보기 앞서 이야기했듯이 11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여러 정체성 집단을 기념하는 날은 여럿 있지만 트랜스젠더는 3월 31일 가시화의 날과 더불어 추모의 날이 존재한다. 이는 트랜스젠더들이 사회적 차별과 낙인 속에서 사회적 타살을 겪기에 만들어진 날이다. 이때가 되면 나 역시 곁에서 떠난 사람들을 추모한다. 모든 추모가 그리움과 슬픔을 가져오지만 그중 특히 아프게 기억되는 이가 한 명 있다. 그 친구의 경우 사망 당시 가족과 나를 포함한 지인 몇 명을 빼면 아무도 트랜스젠더인지를 모르는 이였다. 이를 알리고 싶지 않았던 가족들은 그 친구의 장례식을 그냥 법적성별에 따라, '시스젠더'로서 치렀다. 그렇게 하여 본인이 바라지 않았을 이름으로, 사진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추모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층 더 슬펐다. -- 하지만 그렇다고 법 제정이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법의 제정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이름 지어지지 못했던 차별의 경험에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드러나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존재를 법의 문언 아래 드러낼 수 있다.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사유에 포함되고 이에 대한 정의 규정이 만들어지는 일은,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오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지우고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안주하고 있던 사회를 일깨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추모받는 그러한 변화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차별금지법이 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이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지만 특히 올해는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합격생을 통해 트랜스젠더 인권의 현실이 드러났던 해였다. 그러한 2020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더는 아픈 추모가 없기를 바라며, 아직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머뭇대고 있는 정부와 국회에 한 마디를 건넨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트랜스젠더 혐오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추모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차별금지법, #TDOR, #트랜스젠더추모의날 (BUTTON) 추천41 댓글1 (BUTTON) 스크랩 (BUTTON) 페이스북 (BUTTON) 트위터 (BUTTON) 공유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