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
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사회 용어 중 하나로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라는 말이 있다. 정상적인 부모와 자식의 범주를 벗어나 갈등을 빚고 있는 막장 부모의 유형 중 하나로 헬리콥터와 같이 아이를 맴돌며 감시하고 인생사에 대한 모 간섭이 심한 부류를 의미한다.
이런 유형의 부모는 처음에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애정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집착 끝에 자식을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될 정도로 우선순위가 뒤집히는 막장 사례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실에도 알게 모르게 이런 헬리콥터 부모의 이야기가 알음알음 소개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빌어 만들어지는 창작물에서는 끝내 자식의 선택권을 빼앗고 멋대로 조종하는 등 막장도가 더욱 극대화된 헬리콥터 부모의 사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일념 하에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쥐락펴락하는 입시 코디네이터와 관련된 암투를 다룬 드라마
그런고로 이번 주제는 '비디오 게임 속 최악의 헬리콥터 부모'가 되겠다.
■ 잘 키운 딸 하나 열 제물 부럽지 않다
이때까지만 해도 악마들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어 마녀단에게 신변을 위협당한 선한 어머니인 줄 알았다
초장부터 소개드릴 이 분은 이쪽 계통에서 끝판왕에 가까운 분이다. 바로 <디아블로 시리즈>의 빌런 아드리아다.
아드리아는 <디아블로>에서 마법 상점 NPC로 처음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수상쩍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메인 스토리에서는 동떨어진 '지나가는 등장인물'의 포지션이었으나 15년 뒤 후속작 <디아블로 3>에서 동행자 '레아'의 친어머니임이 밝혀지면서 주요 캐릭터로 지위가 격상하게 됐다.
아이를 낳고 홀연히 사라져 외동딸인 레아가 부모가 아닌 다른 이들의 손에서 모른 채 자라게 한 주제에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나타나더니 일곱 악마를 모두 때려잡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며 레아가 신비한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혹독하게 수련시킨다.
가르치는 방식이 혹독하긴 해도 세계 멸말 일보 직전인 불가피한 상황인지라 정상 참작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사실 네팔렘의 세상이 천사건 악마건 누군가의 손에 결딴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디아블로 시리즈의 암울한 세계관을 감안하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딸 레아에게 부득이한 희생을 강요하는 아드리아의 행적은 그냥 헬리콥터 부모로만 보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3막의 엔딩을 보면 결국엔 막장 헬리콥터 부모가 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레아를 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 디아블로의 부활을 위한 스페어 육체로 삼았는데 디아블로의 힘을 온전히 잘 사용할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2막 중반부터 1:1 대인 지도를 아끼지 않은 것을 보면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 결과는 '네 아빠, 디아블로의 새 몸이 되어라'였다
■ 국가가 원하니, 네 인생은 데마시아를 위해
럭스는 배경을 알고 보니 겉으로 보이는 캐릭터의 이미지처럼 마냥 밝고 쾌활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챔피언 설정은 유니버스 이후 상당히 많이 변한 부분이 있지만 럭스(럭산나 크라운가드)는 변경 전이나 변경된 이후나 헬리콥터 부모로 인해 고통받은 사례다.
유니버스 이전에 정의의 전장에 참가하게 된 배경을 다루는 뒷이야기 '리그의 심판'에서는 오빠인 가렌 외에도 부모와의 관계를 잠시 엿볼 수 있는데 이 부모가 국왕의 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가족이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던 럭스를 군에 강제로 징집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실제로 럭스를 데려가게 된 군의 장교는 '소녀는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고 오빠가 징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들며 염려했지만 오히려 그녀의 부모는 럭스의 입대를 가문의 영광이며 데마시아에 큰 도움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 모습을 보이며 자식보다는 가문과 국가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시점에서 거리가 멀어지므로 완벽하게 헬리콥터 부모는 아니게 됐지만 군 입대와 같이 인생사를 좌지우지할만한 중요한 선택을 부모가 휘두른 시점에서는 이미 최악의 헬리콥터 부모지만 말이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한국 한정으로는 강제로 군대를 보낸 옛 설정의 크라운가드 부모가 보여준 막장도가 유독 심해 보일지도
심지어 설정 변경 후에도 부모의 막장 행각은 변함이 없다. 마법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딸을 도와주거나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마법을 상종하지 못할 요사스러운 힘으로 취급하는 데마시아의 풍조에 따라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품고 있던 마법의 힘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불법 시술을 제안한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정의의 선역으로 대표되고 있던 데마시아가 실은 전체주의와 독선적인 사상을 국민 전체에게 강요하는 폐쇄적인 국가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긴 하지만 설정 변경과 관련 없이 딸의 삶을 제멋대로 쥐고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크라운가드 남매의 부모는 적어도 럭스 한정으로 심각한 수준의 헬리콥터 부모라 볼 수 있다.
■ 자식에게 헬리콥터 부모 인증서 발급받았습니다
과... 과연 불혹!
<포켓몬스터 썬·문>의 등장인물인 루자미네는 본래 울트라홀 너머에 있는 미지의 영역을 연구하다가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그의 연구를 이어받은 평범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쳐버리면서 울트라홀을 여는 목적이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만이 허락되는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으로 변질된다.
그 때문에 계획의 핵심이 되는 인공 포켓몬 타입:널과 울트라비스트 코스모그를 또 다른 자식으로 취급하면서도 가학적으로 대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며 그들을 제어하기 위해 조직에 묶어두며 도구로 이용하던 진짜 딸과 아들이 타입널, 코스모그와 교감을 나눈 끝에 탈주를 선택하자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놓은 것을 간주하여 척을 지게 된다.
고작 10대 초반의 아이가 이런 비난을 쏟아낼 정도면 부모의 막장도가 얼마나 심한 것일까
그 때문에 딸에게는 '자식과 포켓몬을 도구로 여기는 인물'이라는 강도 높은 비난을 들으며 아들에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제3 자도 아닌 자식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을 도구로 취급한 사실을 언급당하며 헬리콥터 부모 인증을 받은 셈이다.
처음부터 자식과의 관계가 막장이었던 다른 사례들과는 달리 그나마 루자미네는 본래 자식들과 평범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던 부모였으며 확장판인 울트라썬·울트라문이나 게임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에서는 오히려 아이들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희생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도 막장도가 변하거나 되려 심해진 다른 헬리콥터 부모들과는 달리 취급이 점점 나아진 독특한 케이스인 셈이다.
게임 기반 애니메이션에서는 일 중독자 설정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캐릭터다
■ 대물림되는 헬리콥터 부모의 계보
처음 볼 땐 날카로운 인상이긴 해도 막장 인성의 소유자로 보이진 않아 보이나 부모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최악의 인물
의 등장인물 '할란 웨이드'는 텔레파시 지휘가 가능한 초능력 병사 양산을 목적으로 하는 극비 계획 프로젝트 오리진의 책임자로 늘그막에 프로젝트의 실험체인 '알마'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이를 풀어주려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인물이다.
언뜻 보면 창작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뒤늦은 자책과 후회 끝에 세상을 하직하는 피해자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딸이었던 알마를 실험체로 제공한 것도 모자라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강제했고 그렇게 낳은 자식들을 알마와 분단시킨 탓에 사고가 발생하자 주저 없이 자신의 친딸을 살해한 비정하기 짝이 없는 막장 헬리콥터 부모라는 사실이 후에 밝혀진다.
그나마 말년에는 새로 얻은 자식에게는 진심 어린 애정을 쏟았고 자식의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다가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처분하지 않고 쭉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먼저 죽은 딸 알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지만 그의 후회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알마를 해방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비치는 그의 모습, 아마 자신의 끔살 엔딩을 직감했을지도
심지어 제대로 된 훈육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자라다가 죽은 알마는 자신의 두 번째 자식인 팩스톤 페텔을 자식을 도구로 사용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아버지와 똑같이 막장 헬리콥터 부모의 길을 걷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