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짜오 베트남-41] 요새 한국 마트에 가면 비닐봉지 구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채소 코너에 가면 쉽게 작은 투명 봉지를 구할 수 있었는데 이걸 다 감춰버렸다고 하네요. 쓰레기를 줄이라는 정부 압박이 내려온 이후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비닐봉지 사용이 잦으면 과태료를 물 수 있어 마트들이 내놓은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당근과 감자를 고르는 주부들이 "비닐봉지 어디 갔냐"고성화를 부리면 그때서야 선반 안에서 하나씩 꺼내주고 한다는 소식입니다. 흙이 묻은 채소 사기가 번거로워졌다는 주부들의 아우성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베트남 마트는 비닐 사용에 훨씬 관대한 편입니다. 예를 들어 생수와 감자, 과자 몇 개와 닭고기, 우유를 샀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마트 점원은 적어도 비닐봉지 세 개에 각각 담아줄 공산이 큽니다. 아마도 생수와 우유를 한데 담고 감자 봉지와 닭고기를 하나로 묶을 가능성이 큽니다. 과자 몇 개는 묶어서 하나의 봉투에 담고요.

베트남은 아직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도 없습니다. 음식물 쓰레기와 휴지를 비롯한 생활쓰레기,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캔을 한데 섞어 아무 봉투에나 넣고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1인당 GDP가 아직 3000달러가 되지 않는 베트남에는 환경보다는 성장이 우선입니다. 환경 보호와 성장이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은 아니지만 통상 역사를 보면 양자 간에는 적당한 트레이드 오프 관계가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의무화한 것은 1991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1인당 GDP가 7500달러를 넘겼을 때였습니다. 1995년 1월 1일에는 쓰레기 종량제가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며 쓰레기 분리수거 정책을 한층 강화했는데, 이때 한국 1인당 GDP는 1만2300달러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때가 되면 환경의 중요성에 눈을 돌릴 만큼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얼마 전 한화그룹이 베트남 남부 빈롱성에서 태양광 발전 쓰레기 수거보트를 기증하는 세리머니에 참석했습니다.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 호찌민 공항에서 버스로 세 시간을 넘게 달려 찾은 빈롱성은 한적한 중소 도시에 가까웠습니다. 그중 행사가 열린 빈롱성 선착장은 중국 내륙에서 발원해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을 관통해 바다로 흘러가는 메콩강 하류에 접했다는 것 말고는 볼 것 없는 쓸쓸한 곳에 불과했습니다. 물길을 따라 줄 서 있는 반수상가옥은 쇠락했으며 쓰레기가 떠다니는 강물은 심란했습니다. 한화그룹이 이곳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한화그룹은 태양광 분야 세계 1위 경쟁력을 가진 한화큐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해 모터를 돌릴 수 있는 쓰레기 수거선 2척을 기증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모든 동력은 배 천장에 달린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됩니다. 이 패널에서 생산된 전기는 배 하부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를 돌립니다. 그래서 배의 '입'으로 들어온 쓰레기는 컨베이어 벨트를 거쳐 배 안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구조입니다.

배 크기는 전장 6.45m, 폭 2.3m, 높이 2.6m로 크지 않습니다. 그래도 수거 가능한 쓰레기는 하루 300㎏에 달해 쏠쏠한 성능을 자랑합니다. 배 이름은 '솔라 히어로(Solar Hero)'. 메콩강을 살리는 영웅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왜 여기에 솔라 히어로가 필요한지 아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물 비린내가 섞인 악취를 맡으며 강가에 서 있자 줄지어 있는 수상가옥에서 쓰레기 봉투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하나둘씩 강으로 퐁퐁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곳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버린 쓰레기가 바다로 가기 전 종점처럼 모인 곳입니다. 많을 때는 쓰레기가 강을 전부 메우기도 한다는 소식입니다. 그나마 번듯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모은 봉지를 쓰레기 집하장에 버려, 쓰레기 뭉치가 소각되거나 아니면 매립되지만 그럴 형편까지도 되지 않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그냥 강물에 투척하는 수준입니다. 아직 1인당 GDP가 채 3000달러에 못 미치는 베트남에 쓰레기 정책을 기대하기란 시기상조일까요. 그런데 알고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난 6월 9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시 번화가인 호안끼엠에서는 환경 보호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가 참가했습니다.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을 주로 전시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푹 총리의 말을 옮겨봅니다.

"플라스틱 폐기물 오염은 시급한 문제다. 경제와 사회, 환경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세 가지 축이다. 환경 오염 방지를 포함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아직도 베트남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비닐 봉투를 사용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따로 분류되지 않고, 이에 따라 재활용 비율이 낮은 것도 큰 문제다." 그래서 푹 총리는 전국의 지방성과 기업들에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행동하라는 메시지도 전했다고 이날 말했습니다. 환경 보호에 둔감해 보이는 베트남이지만 '톱다운' 방식으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하노이시에서 발표한 내용은 더 진보적입니다. 하노이시는 최근 2021년부터 하노이 마트에서 비닐 봉투를 100% 사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왜 하노이시는 갑자기 환경을 보호하는 칼을 빼들었을까요.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밑도는 베트남에서 어떻게 이런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하노이시의 1인당 GDP는 4000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아직 지하경제가 발달한(거래 중 현금 비중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하노이 특성상 1인당 GDP가 1만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상당합니다. 그렇다면 이를 기반으로 추산할 때 1991년 한국 1인당 GDP가 7500달러를 넘겼을 때 쓰레기 분리수거 제도가 나오고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1995년 한국 1인당 GDP는 1만2300달러를 찍었다는 통계와 현재 하노이 상황은 괴리가 확 줄어듭니다. 반대로 돌려 말하자면 하노이도 이제는 꽤 먹고살 만한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베트남 시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쓰레기와 관련한 비즈니스 기회도 잘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화그룹 같은 경우 쓰레기를 비즈니스 관점보다는 CSR 관점으로 보고 먼저 접근을 했습니다. 사실 궁극적인 목표는 같습니다. 베트남 국민 마음을 사로잡아 베트남에서 벌이는 한화그룹 사업이 잘되게 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다양한 중소기업들은 직접적인 쓰레기 비즈니스를 하러 베트남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류 열풍을 겨냥한 텀블러 사업을 해보는 것(종이컵을 아낄 수 있겠죠)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고, 베트남 정부의 뜻에 맞게 저렴한 가격으로 잘 분해되는 쓰레기 봉지를 베트남에 수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 베트남이란 나라는 환경 보호에 막 눈을 돌린 상황이지만 베트남 자체적으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쓰레기는 이미 돈과 밀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중국발 쓰레기 폐기 수출길이 막히자 국산 폐지 가격이 급락하면서 폐지를 원료로 골판지를 생산하는 신대양제지를 비롯한 기업은 영업이익이 대폭 올라가며 주가가 가파른 랠리를 펼친 바 있습니다. 2017년 주당 2만~3만원 선에 거래되던 신대양제지 주가는 지난해 가을 주당 10만원 고지를 돌파하기도 했죠. 점차 환경에 눈을 돌리는 베트남 정부의 정책 방향이 어떤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지 한국 기업들이 유심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돈은 항상 변화가 있는 곳을 따라다니니까요.

[하노이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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