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News * 아이의 마음 * 부모의 마음 * 마음을 잇다 * Hot Issue * Culture HOME 폴라리스News 부모의 마음 부모의 마음 유아교육에 대한 독자의 소리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육아를 내려놓고 스페인에 가다 글 강수연 에디터 박은아 1606-20-1.jpg 애 떼어놓고 여행을 간다고? “안녕, 엄마 잘 다녀올게.” 딸과의 영상통화를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비행모드로 바꿨다. 갓 돌이 지난 딸을 두고 나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스페인, 비행 이유는 여행! 결혼을 하면 당연히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철없던 예상과는 달리 엄마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1년 만에 얻은 아이를 유산하고 직장 생활과 병원 진료를 병행했지만 임신은 쉽게 되지 않았고, 결국 휴직까지 하며 오로지 엄마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았다. 그 지난한 노력 끝에 결국 보석 같은 딸, 세연이가 찾아왔다. 아이를 낳자 엄마가 되기 위해 했던 고군분투는 아이를 키우는 고군분투로 틈 없이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작은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에 집중하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그토록 원했던 일이건만, 간사하게도 육아로 인해 점점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 시간 나의 유일한 위안은 TV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스물두 살 처음으로 떠난 유럽 여행을 시작으로, 남들에게 내세울 만큼은 아니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훌쩍 곧잘 떠나곤 했던 나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남편을 버리고(?)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여행은 그저 그림의 떡, 아니 TV의 떡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의 빨래를 개키며 <꽃보다 청춘> 재방송을 보고 있을 때였다. TV 속에 펼쳐진 멋진 여행지를 보고 있자니 반쯤은 농담으로, 반쯤은 절실한 바람으로 친구와 “나 복직하기 전에 같이 해외여행 가자”고 약속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내뱉었다. “나 복직하기 전에 여행 갈래. 당신이랑 세연이는 두고 친구랑 둘이!” 남편의 간결하고 명료한 답이 이어졌다. “그래.” 연애 시절부터 ‘나는 가고 싶을 때 못 가면 병 나는 사람’이라며 남편을 세뇌시킨 효과가 빛을 발한 것일까. 어쨌거나 남편 구간을 무사통과한 후,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여행 기간 동안 딸을 돌봐줄 시댁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꺼내놓자 시부모님 역시 간결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말하셨다. “그래, 갔다온나. 이때 아니면 언제 가겠노.” 코끝이 찡해졌다. 친정엄마마저 제정신이냐며 타박을 하는 마당에 며느리를 지지하며 흔쾌히 아이를 맡아주시는 시부모님이라니. 나만 내키면 떠날 수 있던 때와 달리 주변의 협조와 지지 없이는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여행이었음을 잘 알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1606-20-2.jpg 스페인은 자유, 내 몸은 안 자유 가장 큰 고비를 넘었으니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할 차례였다. 맛있는 스페인 음식점은 어디인지, 세비야와 바르셀로나에서 꼭 사야 할 물건은 무엇인지,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은 왜 훌륭한지 …를 알아보며 여행 계획을 세울 여유 따위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딸의 돌잔치 준비부터 시댁 이사, 복직 준비까지. 육아로 인해 이미 바닥난 체력으로 이 일 저 일 처리하느라 여행 책자를 펴볼 틈조차 없었다. 결국 항공권과 숙소 예약만 겨우 마친 채 출국 날이 다가왔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인천공항에서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친구대로 휴가를 위해 연일 야근을 하느라 지친 상태. 여행의 설렘 대신 일상의 피로만이 짙게 드리운 서로의 얼굴을 보자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우리 이 상태로 여행 다닐 수 있을까?” 농담 어린 말은 비행기에서부터 현실이 됐다. 좁디 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은 채 경유지인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11시간여의 비행. 그 사이 온몸은 서서히 마비돼 갔다. 아이를 낳고 신통치 않아진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편히 몸을 누일 곳 없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의 6시간은 여행을 고행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긴 여정 끝에 드디어 도착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여행 전에는 스페인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래! 스페인, 너는 자유구나!”를 외치며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유럽 6개국을 돌아다녔던 스물두 살 때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피곤에 절어 있는 육신 덕에 별다른 감흥이나 설렘을 느낄 수 없었다. 설상가상 기온마저 우리가 도착하는 날에 맞춰 ‘뚝’ 떨어져 온몸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예약해둔 한인 민박에 겨우 짐을 푼 후 근처 식당에서 첫 끼니부터 해결했다. 허기를 채우고 나니 숙소에 누워 쉬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과 같이 온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녁에는 마드리드 솔광장을 구경했다. 역시나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1606-20-3.jpg 유모차의 천국 스페인 다음 날 나는 임신과 출산, 육아까지 이어진 기간을 통틀어 가장 상쾌하고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다. 장거리 비행의 피로도, 육아의 고단함도 민박집의 조악한 침대 속으로 모두 쏟아져 나간 것 같았다. 체력이 회복되자 여행 의지도 되살아났다. ‘그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마침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 명물인 엘 라스트로 벼룩시장이 서는 일요일이었다. 평소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유럽의 벼룩시장,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장으로 향하며 평소 좋아하는 예쁜 그릇을 꼭 사리라 다짐했다. 벼룩시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가득했고, 파는 물건의 종류 역시 다양했다. 예쁜 타일로 장식된 거울, 손때 묻은 가방, 귀여운 오르골 그리고… 아기 옷! 내 시선은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 아기 옷과 장난감에 멈췄다. 7박 9일만큼은 엄마라는 타이틀에서 자유로워지겠다던 의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여행 내내 아기용품과 유모차, 엄마 품에 안긴 아이를 볼 때마다 고정되는 시선을 어찌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스페인 거리에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이 많았다. 특히 바로셀로나에는 유모차에 아기를 앉힌 채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을 즐기거나 거리를 활보하는 엄마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보행자를 배려한 바르셀로나의 도시건축이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바르셀로나는 1800년부터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막기 위한 도시계획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한 것이 도시의 주인인 사람들을 배려한 건축이었다. 덕분에 바르셀로나 거리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끌기 쉽게 정비가 잘 돼 있고, 체계적인 거리 구획 덕에 대중교통 이용도 편리하다. 한국에서는 엄마 혼자 유모차를 끌고 외출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크나큰 모험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엄마들이 태어난 지 3~4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와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606-20-4.jpg 엄마와 자유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마드리드에서의 짧은 하룻밤을 보내고 이동한 세비야는 한결 따뜻한 날씨와 낭만적인 분위기로 여행의 감흥을 한껏 끌어올렸다. 햇살 좋은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서 마시는 한낮의 와인 한 잔, 히랄다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세비야 구시가지, 골목을 누비는 재미가 있는 산타크루즈 거리와 공기마저 달콤한 스페인광장의 밤까지…. 세비야의 낭만에 빠져들며 잊고 있던 내 안의 여행자 본성도 서서히 깨어났다. 바르셀로나는 또 어떤가. 가우디 투어를 통해 마주한 안토니오 가우디 건축물인 구엘 성당과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는 섬세하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생기 넘치는 바르셀로나의 거리와 다양한 먹거리로 가득했던 보케리아 시장, 우연히 찾아낸 해산물 요리 식당에서의 만찬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여행을 한껏 즐기는 동안에도 ‘엄마’라는 정체성은 시시때때로 나를 찾아왔다. 틈날 때마다 아이를 찍어둔 동영상을 보며 그리워했고, 딸에게 줄 예쁜 아기 옷을 사겠다는 일념으로 바르셀로나 상점가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세연이와 여길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가도 이내 ‘애 데리고 오면 나만 고생이야’라는 마음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친구를 여행지에 내버려두고 혼자 숙소에 돌아온 날에는 의지와 다른 내 몸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웅장함과 정교함, 독창성에 압도당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도 불현듯 가족 생각이 났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딸과 홀로 집을 지키고 있을 남편, 선뜻 아이를 맡아주신 시부모님, 그리고 잔소리는 했지만 딸을 걱정하고 있을 친정엄마까지. 여행을 시작할 때는 내게 주어진 모든 역할에서 벗어나 나를 찾으려 했는데, 막바지에는 결국 가족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롭고 싶은 나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나, 오로지 나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과 엄마로서의 본능은 그렇게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충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니까. 오히려 여행을 통해 그동안 잠시 제쳐 두었던 ‘나’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며 조화를 찾은 기분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내 자신의 행복을 좇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는 엄마를 보며, 내 딸 역시 그렇게 자라기를 바라니까. 1606-20-5.jpg 1606-20-6.jpg 엄마의 여행은 미래진행형 짧은 여정이 아쉽기는 했지만 빨리 돌아가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공항에 도착해 시댁으로 가는 길에는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드디어 일주일 만에 이뤄진 모녀 상봉. 하지만 벅차오르는 나와 달리 딸은 미소 한 번 ‘쓱’ 보여주고는 끝이다. 감격의 해후까지는 아니어도 “엄마”하며 안겨는 줄 줄 알았건만. 엄마 없이 잘 지내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이 들었다. 그래도 일주일 만에 딸을 안으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다시는 혼자 여행을 가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여행에서 돌아오자 정신없는 일상이 나를 두 팔 벌려 맞이했다. 복직과 함께 워킹맘의 세계에 입성, 엄마와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숨 돌릴 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날이 이어졌다. 그 사이 가끔 들춰보는 스페인 여행 사진은, 위로와 휴식을 주는 보물상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역시 직접 다녀온 여행의 추억은 대리만족의 TV 프로그램보다 훨씬 힘이 세다. 그 사이 TV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또 다른 청춘들이 여행을 떠났다. 아이를 재우고 TV를 보던 나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5년 뒤에는 아이슬란드 가자. 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강수연 19개월 된 딸 세연이의 엄마이자 7급 공무원.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종종거리며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늘 떠날 준비가 돼 있다. 2016.05.24 오전 12:00:00 행복을 키우는 영유아 교육라이프 매거진 - 폴라리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