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마이기 전에 몇 년 전 기억이다. 마감을 끝내고 간만에 엄마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배 를 깎고 있던 엄마는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반백이 된 배철 시절 통기타를 치던 포크송 가수들의 이름은 줄줄 꿰는 엄마는 이장희나 송 이 내 어린 시절에 가득했으니 말이다. 엄마는 서유석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엄마. 요즘엔 듀엣이 거의 없어. 일본에 AK B48이라는 그룹이 있는데 걔네 엄마는 내가 ‘슈퍼주니어’ 멤버가 13명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게 뻔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딸의 통박에 나이 육십 된 엄마는 한껏 눈을 흘기며 당장 엄마는 재클린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끼고 멋스런 미니스커트에 통굽 하이힐 바라보고 있었다. 그 웃음이 봄 햇살처럼 순해서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엄마 처럼 보이질 않았다. 엄마가 “네 나이 때, 난 벌써 중학생 학부모였다!” 엄마의 사진을 보는 동안 아마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960년대 로 여행할 수 있다면 젊은 엄마를 꼭 만나고 싶다고.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 그 시절로, 엄마가 통 넓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고,이장희와 윤형주의 효도나 효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어떤 날은 엄마가 한 얘길 든 엄마가 하는 옛날이야기에 잔소리나 하지 않으면 그게 효심인가 싶기도 엄마 역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 다. 엄마가 여자이고, 여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이었고, 덜떨어진 어린애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엄마는 내게 끊임없이 말을 한다. 간혹 침묵조차 그럴 듯한 대답이 될 만큼 딸과의 시간이 좋은 것이다. 나는 엄마가 따라 부르는 신의 시간을 나누는 것, 함께 있어주는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깎 이토록 아름다운 단발머리 소녀가 엄마였단 사실 때문에 저토록 늙은 엄마의 다고 말하는 엄마가, 초미니스커트를 ‘똥꼬 치마’라고 고쳐 부르는 1970년 대 사진 속 나의 엄마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