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TINY SNOWFLAKE
니나 안 포토그래퍼
누군가의 일부가 되는 건 서두르거나 강요할 수 없다. 그건 조용히 내려앉은 눈송이가 살갗에 스미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 옥상에서, 수풀 어귀에서, 문 안팎으로 마주치는 감정을 포착해온 어느 사진가의 일상에서 그 진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Q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남편 톰Tom과 토끼 래버트 그리고 18개월 아기와 살고 있어요. 톰은 사이클 자전거를 타는데, 아마추어 대회에도 참가하고 있어요. 꼭 말해달라고 했어요(웃음).
Q 토끼와 아기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A 래버트는 주로 베란다에서 지내요. 영역이 확실한 동물이라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있는데,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더 조심스러워 하더라고요. 예전만큼 챙겨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먼저 래버트에게 다가갔어요. 좋아하는 사료를 잔뜩 주고는 한참을 쓰다듬어 주더라고요. 평소 제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그대로 따라 하네요. 이제는 둘이 제일 친해요.
Q 봄에 태어난 딸에게 ‘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친구가 있어요. 아이의 애칭인 ‘눈송이’라는 이름도 계절과 관련 있나요?
A 주변에서 “눈송이는 겨울 아기지?” 하고 물어와요. 사실 아이는 한여름에 태어났어요. 태명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첫눈이 내렸기 때문이에요. 너무 기다렸던 일이라 감격했었죠. 본명은 알렉산더 선우 대링톤Alexander Sunwoo Darrington이에요.
Q 아이가 어디서 누굴 만나든 낯가림 없이 밝은 모습인 게 인상적이었어요.
A 타고난 기질인 것 같아요. 저와 남편 둘 다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거든요. 누군가는 해맑다고 하지만, 저희 엄마는 철없다고 하세요(웃음). 얼마 전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에게 ‘오늘도 울지 않고 잘 지냈다, 엄마와의 유대가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엄마와 애착 관계가 잘 형성돼 있으면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덜하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게 부모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인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연결된 부모와의 믿음이 아이에게 세상을 대면할 용기를 주는 게 아닐까 하는.

Q 시댁에 다녀온 사진을 봤어요. 가족과 산책하고 차 마시는 시간이 귀했을 것 같아요.
A 시댁은 영국의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라는 지역이고, 시골이지만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에요. 아름답고 스산한 들판이 펼쳐져 있죠. 머무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산책을 갔어요. 매일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 말을 방목해놓은 곳도 있고, 유서 깊은 고성이 있는 곳도 있었어요. 야생의 대지를 걷고 오면 추워서 코끝이 빨개져요. 그럼 다들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를 접하고 차를 마셨을 때 온몸에 열기가 차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말했죠.
Q ‘엉덩이 미남 셋’이라는 사진도 유쾌했어요.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뒷모습이 함께 찍혀 있는데 왠지 뭉클하더라고요.
A 가끔 소외감마저 느낄 정도예요. 대링톤 가의 남자들끼리 끈끈한 유대감이 있거든요. 걸음걸이와 자는 모습도 비슷해요. 시아버님이 굉장히 가정적이에요. 흔히 서양에서는 자녀를독립시키는 게 당연할 거라고 여기는데, 제가 아는 영국인들은 그렇지 않은 편이에요. 특히 톰과 아버지 사이는 현지 친구들조차 부러워하더라고요. 일주일에 두 번은 영상통화를 하며 별스러운 얘기를 별스럽지 않게 나누는데, 그 모습이 좋아 보여요. 서로 노력하는 관계라는 게 느껴지거든요.
Q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어본 적 있나요?
A 그럼요. 일단 두 사람은 관심사가 같아요. 음악을 좋아하고 그 감상법을 공유하는데, 어떻게 하면 음악을 더 잘 들을 수 있는지, 어떤 장비를 쓰면 좋을지 얘기해요. 그러다 결국 아버님이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요. 영국은 음악 산업이 발달해서 하이파이 기기를 사고파는 시장도 잘돼 있고 그걸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간혹 정치가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하는데, 의견이 달라 논쟁을 벌일 때도 있어요.
Q 가족 간의 대화는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정말 한 식구가 됐다고 느낀 순간은 따로 있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대화 주제를 찾지 못했어요. 시댁이 있는 곳은 작은 지역사회라 동네 주민들끼리 서로의 역사를 다 알고 있어요. 어떤 소식을 전하거나 농담 한마디를 해도 마을에 관한 내용이라 깔깔 대고 웃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외로운 섬이 되곤 했죠. 그러다 가족들이 말이라도 걸어오면 멈칫했어요. 주로 문화 차이나 정치적 문제에 대해 묻는데,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이제 눈송이가 있기 때문에 대화 거리가 풍부해졌어요. 자연스럽게 안정이 되고 유대감도 생겼어요.

Q 두 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을 아이의 세계가 궁금하네요.
A “아이가 무슨 말을 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한국어로 “엄마, 아빠”라는 말은 빨리 했는데, 영국에서 한 달 정도 있다가 오니 한국말이 멈췄어요. 한창 “이거, 그거” 할 시기인데 “This, This”라고 하더라고요. 평소 음악이 나오면 반응이 빠른 편인데, 억양이나 발음이 화려한 영국 특유의 어감이 아이에겐 음악처럼 들린 것 같아요. 특히 시부모님의 베이비토크는 거의 동화구연 수준이거든요. 영어에 호감을 느끼면서 ‘어떻게 말해야 하지?’ 하고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Q 한국어와 영어, 둘 다 모국어로 익힐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어를, 남편은 영어를 맡아서 가르치기로 했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고 있어요. 저와 남편이 주로 영어로 얘기하거든요. 제 친구는 아빠가 독일인, 엄마가 한국인인데 정작 아빠 언어는 배우지 못했대요. 엄마는 한국어를 쓰고, 엄마와 아빠는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에요. 부모가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모국어라도 영영 놓칠 수도 있어요. 교포들 중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책임감이 막중해요.
Q 어렵네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교육에 소홀할 수 없으니까요.
A 저희 부부가 바라는 건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는 거예요. 톰은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부족한 잠을 자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모습이 큰 충격이었나 봐요. 너무 많은 시간을 공부에만 할애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하더라고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주고 싶다고 해요. 조만간 영국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기반이 없는 곳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아이를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Q 엄마가 되는 건 배운 적 없는 일을 해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니나 씨가 사진을 전공하지 않고 사진가가 된 것처럼요.
A 시골에 살았고 공부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정보도 없었고요. 어쩌면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 없이 사진을 해올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다만 왜 진작 카메라를 쥐어보지 않았을까, 왜 그런 기회조차 없는 환경이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요. 제 아이는 벌써부터 카메라를 잡아요. 자기 눈높이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요. 플래시가 번쩍 터지면 깜짝 놀랐다가 다시 까르르 웃어요. 어떤 제약 없이 여러 경험을 시켜주려고 해요. 저희 부부가 가진 것들을 자연스레 접하며,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글 오혜진 사진 니나 안
-글·사진 전예진 에디터 오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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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 Magazine vol.02 F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