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일곱, 이 나이가 되어도 친구 사귀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결국 엄마가 된 후, 내 인간관계의 틀은 ‘엄마’라는 이름 아래 완전히 재편됐다. 예전엔 그리 가깝지 않던 사이였어도 ‘물리적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아이 엄마(혹은 아빠)’면 자연스레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아이를 데리고 만날 편한 장소를 찾다 카페에서 ‘친구 찾는다’며 글을 올리는 엄마들이었다. 얼마나 인간관계가 엉망인 ‘찌질’한 사람이면 인터넷에서까지 친구를 찾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지금은 나의 무지몽매함과 오만함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엄마들이 얼마나 외로우며 씨름하는 일상만을 반복했다. 내가 물리적으로 만날 수 있는 ‘두 아이를 달고 만날 수 있는 근거리에 사는 엄마 사람’이 없으니 카페를 통해 알게 된 2015년생 아이 엄마들과 함께하는 ‘정모’에 참가한 것이다. 어찌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도 다들 십년지기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좋아했다. 그저 같은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들은 첫째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의 같은 반 엄마들과도 가까운 사이가 됐다.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내 아이를 신경 쓰는 데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이 샘솟았다. 이제는 서로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아이들 각박하고 바삐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엄마들은 그렇게 친구를 만들고 사람 냄새를 맡으며 살아간다. 엄마가 돼 감사한 일 중 하나는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엄마들의 인생을 별로 배려하지 않는 곳이어서 ‘엄마 노릇’하기가 힘들다 보니, 반대급부로 엄마들 간의 ‘동지애’가 더욱 끈끈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부디 바라건대, 세상살이를 한탄하며 엄마들의 우정이 전직 신문기자이며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경향신문 정치?사회부 등에서 10년간 기자로 일했고, 온라인 저널리즘에 관한 책 <잃어버린 저널리즘을 찾습니다>를 집필했다. 퇴사 후 엄마의 시각으로 써온 글들을 다듬어 사회적 에세이집 <요즘 엄마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