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매거진 » KBoard 통합 피드 위 매거진 » 피드 위 매거진 » 댓글 피드 위 매거진 » 그렇게 엄마가 된다에세이 댓글 그렇게 엄마가 된다 파라솔 빛이 떨어졌다. 엄마, 드디어 나은이가 걸어요. 물결이 파도쳤다.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남녀공학을 다니는 사춘기 소녀가 자신감을 갖는 방식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차렸다. 집과 학교 사이에는 시장이 있었고 엄마는 꼭 하교 시간에 맞춰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나와 장을 보고 계셨다. “멸치 같은 다리를 드러내고 어디를 신나게 가시나?” 엄마는 도망가는 나를 불러 세워 둘둘 말린 치마를 나온 엄마들과 하교하는 학생들이 썰물처럼 만나면 시장은 더 활기가 넘쳤다. 동생은 막 튀겨낸 어묵을 들고 있었고, 나는 호떡 엄마는 엄했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아이였다. 콩나물 봉지와 신발주머니를 들고도 은근슬쩍 다른 한 손으로는 풀어진 허리를 말아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열심히 저녁을 지었다. 먹성이 좋아 늘 사랑받는 동생과 엄마의 저녁 밥 짓는 냄새를 맡고 도마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엄마의 나물과 어묵 볶음을 좋아했다. 엄마가 손바닥만 한 두툼한 어묵을 써는 동안 동생은 엄마 옆에서 제비처럼 문, 절반 남은 어묵을 내밀었다. 작은 주방은 따뜻했고 엄마 밥은 늘 맛있었다. 하복을 입고 첫 등교를 하는 날, 엄마는 큰 옷 가방을 들고 나를 따라나섰다. 아버지와 오래 다투었고 결국 서로 마음을 풀지 못했다. 엄마는 시장 앞에서 택시를 타고 외할머니 댁으로 갔다. 곧 돌아오겠단 말을 했지만 결국 부모님은 이혼을 결정하셨다. 아버지는 자식 욕심이 많았고 우리를 희망으로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를 양육하는 것이 엄마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엄마는 멀리 가지 못했다. 우리를 자주 보러 오기 위해 경주에 터를 잡았고 그곳에서 식당을 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도, 염려되어 종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당신. 열 달 입덧으로 엄마 밥을 고스란히 먹은 것을 게워냈을 때도 웃으며 밥상을 다시 안방에 차려준 엄마. 나은이를 낳은 후 미역국을 수개월 끓여 보낸 친정 엄마. 우리는 엄마 밥을 오래 먹었고 여전히 그 밥을 먹고 자라고 있다. 엄마가 없었어도 엄마 없는 순간이 없었다. 나은이와 봄을 앞두고 엄마가 계신 경주로 내려가 한 달을 지내다 왔다. 머리 까만 아기를 가슴에 달고 엄마와 동네 시장으로 향했다. “친정 엄마와 시장에 와서 빈 입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란다. 뭐라도 먹고, 음식으로 입을 가셔야 딸이 잘 산대.”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누가 그래요?” “네 외할머니가.” 엄마는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핫도그를 사려고 긴 줄을 혼자 섰다. 아이는 계속 손을 뻗고 있다. “엄마 맘마, 맘마.” 아이에게 빵의 보드라운 속을 뜯어 맛보기로 건넸다. 점점 살이 올라 무게가 느껴지는 아이, 가슴 앞에 달려 포기를 모르고 쉼 없이 핫도그를 달라는 아기를 안은 채 빨간 시장바구니를 끌고 앞서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너무 까맣고 성성한 머리, 파마약 냄새가 퐁퐁 나는 엄마의 휑한 머리 위로 봄볕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