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일단 내년에도 계속 지휘봉을 잡을 전망이다. 프로야구 한화 구단은 지난 3일 오후 조직 개편 사항을 공식 발표했다. 김 감독의 유임과 함께 기존 박정규 단장은 사업총괄본부장으로, 박종훈 전 NC 다이노스 육성이사가 신임 단장으로 임명된 것이 인사 개편의 핵심이다.
2014년 겨울 3년 계약으로 한화 지휘봉을 잡았던 김성근 감독은 내년까지 남은 계약기간을 채우게 됐다. 김 감독은 지난 2년간 막대한 투자와 전력보강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가을야구 실패, 독선적인 팀 운영과 혹사 논란으로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감독 교체와 팀 운영의 정상화를 강력하게 요구해왔던 다수의 야구팬들로서는 못내 안타까운 결과다. 하지만 한화는 쉽고 올바른 길을 포기한 대신, 내년에도 풍성한 논란과 각종 사건사고를 이미 예약하며, 욕하면서 보지만 재미는 보장하는 '한화표 막장드라마 시즌 3'를 선택했다.
김성근 유임, 그룹 수뇌부 결정?
한화는 왜 김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을까. 표면적으로는 계약기간을 지킨다는 명분을 꼽을수 있지만 지난 2년간의 거듭된 실패와 투자 대비 성과, 각종 구설수로 인한 구단과 모기업의 이미지 악화 등을 생각하면 득보다 실이 많은 결정이다. 이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을 한화 구단에서 굳이 김성근 감독을 버리지 않은 것은 결국 결정권을 거머쥔 모기업 오너의 판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한화는 2014년 겨울 당시 김성근 감독 영입을 두고 구단 프런트의 반대에 불구하고 모기업에서 김 감독 선임을 강행한 바 있다. 성과가 좋지 않았지만 이제와서 계약기간이 남은 김 감독을 내치게되면 수뇌부에서 당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어 모양새가 우스워질 수밖에 없었다.
한화가 김 감독을 교체할 의지가 있었다면 이미 시즌이 끝난 후 여러 번 결단을 내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굳이 한국시리즈가 끝날때까지 유임 발표를 미룬 것만 봐도 경질 가능성이 처음부터 거의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 개인의 도덕성 문제나 여론의 평가를 배제하고 철저히 상업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김성근 야구'는 여전히 상품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마치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처럼, 김성근 야구는 논란과 화제를 몰고다닌다. 김 감독 부임 이후 한화는 비록 부정적인 이슈일지라도 높은 관심을 끄는 구단이 됐다. 어마어마한 선수 혹사와 유망주 유출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한화는 매 경기 흥미진진한 승부로 마리한화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화가 굳이 우승이나 팀의 미래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계약기간이 1년밖에 남지않은 김성근 카드를 더 끌고가는 것도 구단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계산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간의 성과나 김 감독의 나이를 감안할 때 어차피 당장 경질되지 않더라도 내년 이후 재계약 가능성은 그리 높지않다.
물론 다음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도 차지한다면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난 2년간의 시행착오에서 보듯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물론 김성근 시대가 이어지는 동안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선수들의 희생이나 팬들의 비난을 무시한다는 점에서는 장기적으로 무책임하고 안이한 결정임에 틀림없다.
한화의 변화 시도, 프런트 권한 강화 대신 한화 구단도 이번엔 최소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신경쓴 흔적은 보인다. 한화가 김 감독 유임과 함께 제시한 카드는 결국 프런트의 역할과 권한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박종훈 신임 단장은 LG 트윈스 사령탑 경력을 지닌 야구인 출신이다. 감독 출신이 단장이 된 것은 KBO 역사상 처음이다. 본인이 바로 '현장 전문가' 출신의 프런트라면 제아무리 베테랑 감독이라도 가볍게 대할 수 없다.
한화는 지난 2년간 김 감독에게 팀 운영의 전권을 사실상 일임했다. 하지만 이는 팀 운영의 사유화와 정보통제,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성인 프로 선수들의 자율성을 억압한다는 인권 침해 논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한화 구단의 조직 개편은 이제 김성근 1인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 다시 과거처럼 현장과 프런트가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분업화' 시스템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이론적인 구상대로라면 김 감독은 내년에는 1군 운영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권한이 축소되고, 선수 영입과 육성, 트레이드 등은 다시 프런트가 관리하는 체제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병의 뿌리는 그대로 남겨두고 겉만 치료한다고 해서 망가진 시스템이 과연 회복될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지난 2년간 한화를 둘러싼 모든 논란과 구설수의 중심에는 바로 김성근 감독이 있었다. 기왕 프런트를 개편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다면 사령탑 역시 그런 방향성에 함께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개방적이고 프런트 친화형인 감독을 새로 선임하는게 더 적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야구는 감독이 한다'고 주장해온 김 감독은 이러한 현대화된 프런트야구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김 감독은 과거에도 팀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프런트와 숱한 불화를 일으켰던 전력이 화려하다. 프런트의 정당한 견제와 관리조차 현장에 대한 간섭으로 치부하며 갈등을 빚기 일쑤였다.
일각에서는 김 감독이 달라진 환경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그럴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김 감독은 그간 자신의 야구와 리더십을 둘러싼 온갖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일이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김 감독의 야구와 성향을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이라면 그가 절대 스스로는 변화하지 못할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2년간 한화 사령탑으로서 유례없는 절대 권력에 익숙해져있던 김 감독이 계약 마지막해에 돌연 한화 프런트로부터 통제를 받아야 하는 달라진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 감독은 SK 사령탑 시절인 2011년에도 재계약 문제로 SK 구단과 감정싸움을 벌이다가 경질된 전력이 있다.
사제지간인 감독과 단장, 수평적 소통 가능할까김 감독과 박종훈 신임 단장의 궁합도 변수다. 박 단장은 현역 시절 80년대 OB 베어스에서 김성근 감독과 선수와 감독으로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서열이 엄격한 스포츠계에서 야구계 선후배를 넘어 사제관계인 셈이다.
감독과 단장은 직책상으로는 수평적 관계지만 박 단장이 최고령 감독이자 야구계 원로급인 김 감독을 상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게 과연 가능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야구관과 성향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구단 운영에서 서로 불협화음이라도 빚을 경우, 자칫 SK 시절 김성근-이만수 전 감독간의 악연처럼 되지말라는 법도 없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화는 김 감독의 거취 문제를 두고 쓸데없이 오랜 시간 뜸만 들이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대안을 꺼내들었다. 계약기간이 고작 1년남은 감독을 내버려 두고 어떻게 장기적인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년에도 당장의 성적에 올인하겠다는 것인지 방향성부터가 분명하지 않고 모순되는 선택이다.
2017년에도 웬지 한화 극장이 꽃길보다는 흙길에 더 가까울 듯한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